송나라의 유학자 주자는 격몽요결에서 '나이 차이가 갑절이면 아버지 모시듯 하고, 10년 차이면 형님 대하듯, 5년차이는 어깨를 마주대라'하였고
서당, 향교, 서원 등 전통적인 교육기관은 '학년'이 아니라 '성취도'순으로 학급을 나누었으며
조선시대에는 '위아래 여덟살까지는 친구해라!' 할 정도였다
그 유명한 오성과 한음도 다섯살 차이, 류성룡과 이순신도 세살차이...
이황과 기대승의 사단칠정논변이 유명한데
25살차이에 정3품인 이황이, 이제 막 종9품 관리인 기대승에게도 꼬박 꼬박 존대하는것을 볼 수 있다
나이가 많고 지위가 높다한들 막 대하는 것은 오히려 '전통적인 유학자 사대부'에게는 부끄러운 일 인 것이다
지금같이 나이 빡빡하게 따지는건 주민등록 시스템과 군대문화가 자리잡기 시작한 7~80년대 쯤으로 보인다고....
식민지 시절 건너온게 아닐까 싶당